이곳 비사벌초사(比斯伐艸舍)는 ‘슬픈 목가(牧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의 목가시인 신석정님이 사셨던 고택입니다 辛夕汀 詩人은 1907년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303-2번지 신기온(辛基溫)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1924년 조선일보에 첫 작품「기우는 해」를 ‘소적(蘇笛)’ 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고 부안 ‘청구원(靑丘園)’에서 1939년(34세) 첫 시집 ‘촛불’로 목가시인으로 등단 1947년(42세) 제2시집「슬픈 牧歌」를 발간하였으며 1952년(46세)에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 관선4길 42-9번지 이곳으로 이사하며 옥호(屋號)를 비사벌초사로 명명하였습니다
1954년(48세)에 전주고 국어교사, 1955년(49세)에 전북대, 영생대에서 시론을 강의하셨고 1956년(50세) 제3시집「빙하(氷河), 1961년(55세)「단식(斷食)의 노래」,「춘궁(春窮)」등의 작품을「삼남일보」,「민족일보」에 발표, 당국에 연행 취조 후 풀려나 향후 2년간 김제고로 가셨습니다
1964년(58세) 전주상고로 오셨으며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을 역임, 1967년(61세) 제4시집「산의 서곡(序曲), 1970년(64세) 제5시집「대바람 소리」 1972년(66세)에 전주상고에서 정년퇴직하였습니다
1973년(67세)에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2월 21일 ‘전라북도문화상’ 심사도중 고혈압으로 졸도, 예수병원에 입원치료 후 이곳 비사벌초사에서 요양하였스며 1974년(68세) 7월 6일 0시 20분 영면(永眠)하였습니다 전북 부안군에는 석정문학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주 덕진공원에도 석정시인의 동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고 자연을 노래했던 석정시인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풍의 시인이였으며, 암울한 일제시대 창씨개명에 일제를 위해 글을 쓰던 대부분의 문인들과 달리,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절필까지 했으며,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항거 시를 쓴 민족혼(民族魂)이 투철했던 저항시인 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비사벌초사는 한옥으로 대지 331㎡ 본채는 50.6㎡ 팔작지붕의 방3 주방1이고, 별채는 45.7㎡ 박공지붕에 방2 주방1로 되어있으며 정원에는 시인님의 고향 부안에서 옮겨다 심은 동백, 모과, 태산목, 등 정원수에, 모란, 철쭉, 라일락, 등의 화초는 시인님의 유품(遺品)으로 전주미래유산 14호로 지정되었고, 석정시인의 가장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며 詩의 꽃을 피우며 사신 곳이 비사벌초사입니다